세상만사다
광원산업 이수영 회장 이수영 남편 직업 김창홍 나이 본문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이 지난 2020년 7월 23일 KAIST 대전 본원에서 676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출연해 ‘이수영 과학교육 재단’을 설립해 기부를 약정했답니다.
해방 이전인 1936년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은 당대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였던 경기여고를 졸업한 뒤에 서울대학교 법대에 진학할 만큼 총명하고 영특한 인재였답니다. 이 회장의 부모님은 그가 아들보다 강하고 씩씩하게 성장하길 바라셨다고 그는 자서전에서 회고하고 있답니다.
1년 동안 공부한 후 사법고시에 도전했으나 첫 낙방을 경험했답니다. 그 이후 이 회장은 법대를 졸업했지만 법조인에 대한 미련을 깨끗하게 접었답니다. 이 회장은 “골방에만 틀어박혀 책만 읽은 그 시간 동안 심신이 피폐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답니다
그런 그가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신문사 기자생활이었답니다. 서울신문과 아울러서, 현대경제신문, 서울경제신문 등에서 근무한 이 회장은 정·재계 인사들과의 인연,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골동품 취재기 등으로 당시 언론계에서 이름을 떨쳤답니다. 기자로 일하던 이 회장은 지난 1980년 전두환 정부가 서울경제신문을 강제폐간한 후 언론에 대한 미련을 깨끗하게 접은 뒤에, 제2의 직업으로 사업가로 변신했답니다.
아버지가 남긴 50만원 적금 통장 2개를 사업 밑천으로 해 목축업을 시작했답니다. 이 회장은 “농사도 가축도 몰랐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걸 키우는 게 그나마 덜 힘들 것 같아서 목축업을 택했던 상황이다”고 설명했답니다.
그의 사업수완은 남달랐답니다. 돼지 과잉 출하로 육류 가격이 폭락할 때는 국군장병 위문품으로 돌려 이익을 남겼으며 우유 과잉 공급 등의 문제가 발생한 ‘우유 파동’ 때는 초등학생 우유 무료 제공 방식으로 판로를 개척했답니다. 이 회장은 “사업은 운”이라며 “다만 운이 내 앞을 지나갈 때 누구는 붙잡게 되며, 누구는 놓치느냐의 차이”라고 설명했답니다.
그렇게 목축업으로 시작해 모래 채 사업, 여의도 백화점 인수 등 부동산 사업까지 확장한 이 회장은 막대한 규모의 재산을 가진 자수성가 자산가로 성공했답니다. 지난 2012년 경에, 이 회장은 미국에 있는 700만 달러(당시 약 78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KAIST에 유증기부(유언에 의한 유산 기부)한다는 소식을 전해 큰 화제를 모았답니다. 이후 2016년 10억 원 상당을, 올해는 KAIST 대전 본원에서 개교 이래 최대 규모인 676억원 가치의 부동산을 모두 KAIST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답니다.
이 회장이 이처럼 모든 자산을 KAIST에 기부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미국에서 겪었던 일 때문이었답니다. 지난 200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집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매매계약서에 피상속인을 쓰지 않으면 사후 국고로 귀속되는 것을 알게 된 이 회장은 이후 재산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답니다.
이 회장의 결정은 대한민국 과학 발전을 위한 길로 향했답니다. “언젠가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가 발전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가 고민하다 KAIST를 선택했던 것이다”며 “과학기술의 힘이 대한민국 발전의 힘이며, 그 원동력은 KAIST라고 확신한다”고 기부 약정식에서 이 회장은 밝혔답니다.
참고로 80년 넘는 시간 동안 미혼으로 살아온 이 회장은 지난 2018년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으로 대구지검 지청장을 지낸 첫사랑 김창홍 변호사와 결혼했답니다. 이 회장은 “작년 9월 기부 의사를 밝히고 나서 최근 건강이 나빠져서 계속 누워있으니까, 당시에 남편이 ‘그 돈 언제 기부할 거냐’라고 물을 정도로 내 결정을 응원해줬던 상황이다”며 이날 기부 약정식에서 애틋한 부부애를 자랑하기도 했답니다.